21세기 들어서 제작된 한국영화의 특징이 정치적 모호함이었다면, <고지전>은 그 극한을 달리는 케이스다. 그러니까 억지로 남북 사람들 모두 쓰레기 같은 정치가들로 인해 고통 받았다는 식의 억지스러운 자해가 아니라 <고지전>은 그야말로 적아 구분이 황당할 정도로 의미없는 소재를 썼기 때문. 결과적으론 지금의 휴전선이 성립된 과정이니까 당시 싸웠던 군인들에게 큰 절을 올릴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정작 한줌도 안 되는 땅을 위해 인력을 갈아넣었던 그 전선에 투입된 남북 군인들에겐 그냥 생지옥이 따로 없었을 거다. 그래서 <고지전>은 소재 자체가 정치 모호적일 수밖에 없는 영화다. 게다가 꽤 잘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나오는 일장연설만 빼면 완벽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마스터피스에 한 발 못 미친 비운의 수작이다.
아래로 그런 <고지전> 블루레이 오픈 케이스. 지금에야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출시 당시에 화질이 좋기로 유명했다. 당시 여러 오류를 뿜어내던 레드 카메라를 가장 잘 다룬 영화로 꼽히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