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일상

아이묭의 인기가 그저 신기한 이유

즈라더 2019. 9. 19. 06:00

 익숙한 것의 후계자를 찾는 건 당연한 거지만, 그 익숙한 것이 항상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 고인물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일본에서 가장 핫한 솔로 가수인 아이묭을 보며 그걸 느낀다.


 자드부터 아이, 오오츠카 아이, 유이, 아이묭 등으로 이어지는 이 계보는 두어 가수가 리드하고 그 중의 한 가수가 하락세를 타면 그 다음 타자가 나타나 인기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유지되어왔다. 지금 타석에 올라와있는 타자가 아이묭인 셈이다. 일본에선 멋진 싱어송라이터가 나왔다고 (표절 논란이 있기 전까지) 찬사를 거듭했는데, 일본 대중문화에 익숙한 외지인인 내겐 선배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노래를 부르고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아이묭이 괴상하게만 보인다. 쟈니스나 48그룹, 사카미치 그룹도 아니고 싱어송라이터라는, 개성으로 승부해야 할 일본 특유의 포지션이 고인물이 되어버린 건 심하지 않나 싶다. [각주:1] 



 근래 일본에선 케이팝을 완전히 카피한 그룹들이 화제다. 개인적으로 이들이 제이팝이 갈라파고스에서 탈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했다. '우월한' 케이팝을 카피했기 때문이란 멍청한 착각이 아니라 갈라파고스화를 막으려고 자존심을 버리고 카피까지 하는 프로듀서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이 놀라워서다. 비아냥을 듣더라도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 본래 가능성이 충만한 제이팝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아이묭의 인기나 사카미치의 인기, 여전한 쟈니스의 인기와 달리 케이팝을 카피한 그룹들은 유리천장이라도 있는 것마냥 솟아오르지 못 하고 있다. 그나마 본래 나름대로 인기가 있었던 E-Girls나 EXILE 계열의 그룹들이 케이팝 카피로 성과를 거두고 있을 뿐이다.


 난 제이팝이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아이묭의 인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일본의 대중은 좀처럼 익숙한 걸 포기하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이팝은 내가 처음 제이팝에 입문했던 자드, 엑스재팬 시절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함이 없다. [각주:2] 


 물론, 제이팝의 케이팝 카피는 제이팝의 갈라파고스 탈출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 하더라도, 케이팝 그룹들의 팬덤을 빼앗아가는 역할은 하고 있다. 즉, 카피의 목적이 일본에서 케이팝을 몰아내는 거라면, 나름대로 성공적이라 하겠다.


 케이팝은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절대 제이팝처럼 갈라파고스가 되면 안 된다. [각주:3] 



  1. 그래서 일본은 레트로 복고 열풍이니 하는 게 성립하질 않는다. 시티팝 장르조차 탄생 시점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하질 않았다. 비주얼락보다도 10년은 더 오래 고여있는 셈. [본문으로]
  2. 그렇다고 제이팝 노래가 별로라는 얘긴 아니니까 오해마시길. 글을 쓰는 계기가 된 아이묭의 노래들 역시 상당히 좋다. 그저 '신선함'이 극단적으로 부족할 뿐. [본문으로]
  3. 이런 갈라파고스 현상은 일본의 고령화와 나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국도 같은 현상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5천만 인구라는 한계 때문에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어서 완전한 갈라파고스가 성립하진 않을 테지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