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일상

일본만화를 한국에 수출하지 않으면 쿠데타가 일어난다

즈라더 2019. 9. 17. 06:00

 어떤 멍청한 혐한 넷우익이 '일본 만화를 한국에 수출하는 걸 중단하면 쿠데타가 일어날 지도'라고 말하는 걸 봤다. 조국 청문회의 생중계 채팅방에 'いつも炎上する国, 日本の漫画の輸出を禁止してしまうと、クーデターが起きるかも'와 비슷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아무리 열심히 밖을 보려고 노력해봤자 하늘 밖에 안 보인다는 얘길 전에 했었다. 그래도 조국 청문회가 생중계되면서 우물 벽에 구멍이 뚫리지 않았나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국이 일본만화를 거의 소비하지 않게 된지 벌써 15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 보니.


본문과 아무 관계가....없진 않나?


 한 때 <드래곤볼>과 같은 작품이 수천만 권씩 팔려나가고 <짱>과 같은 한국만화도 백만 권씩 팔려나가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건 이미 아주 오래 전 이야기다. 한국의 만화 시장은 만화 대여점으로 1차 타격을 입고, 불법 다운로드로 2차 타격을 입은 뒤 회생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아주 인기가 많은 만화 일부가 간신히 살아남아 연재되었으며,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일본만화의 영향력이 사라져갔다. 일본만화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한국의 환경이 급변한 탓이다.


 보통 일본만화에 열광한 마지막 세대를 지금의 20대 후반으로 본다.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은혼 등이 이끌었던 일본만화의 황금기에 10대를 보냈던 이들이며, 이들을 마지막으로 더는 일본만화에 열광하는 세대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들조차 정식으로 일본만화를 구매해서 감상한 세대가 아니라 불법 사이트의 번역본을 통해서 감상한 세대라는 비참한 현실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건 불법 다운로드에 정신 못 차리던 한국의 잘못이다.



 이제 만화책은 그저 구매력이 있는 30대~50대의 '콜렉팅'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에 발맞춰 아직 살아남아있는 만화 출판사들은 구작들을 '애장판'이란 이름으로 규모를 키워서 판다. 일본 만화 출간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란 얘기다. [각주:1]


 그럼 지금 10대에서 20대 초반의 한국인은 뭘 보느냐. 웹툰을 본다. 아니, 거의 모든 세대가 웹툰을 주로 본다. <원피스>나 <킹덤>처럼 한국인의 취향에 맞고 인기 있는 만화를 제외하면 아예 일본만화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다. 스마트폰을 켜고 터치 몇번, PC를 켜고 클릭 몇번이면 바로 볼 수 있는 웹툰의 접근성은 '구매와 도착'이라는 행위를 먼저 요구하던 만화책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웹툰은 스마트폰이 오기도 훨씬 전, 강풀의 만화가 대박을 치던 시점에 이미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각주:2]


 옛날 같으면 당연히 한국에 정식 출간될 인기, 퀄리티의 일본만화가 이젠 출간되질 않는다. 가끔 일본에서 어떠어떠한 만화가 인기가 있다는 얘길 들을 때마다 한국에 출간되길 기다리지만, 소식이 아예 없더라. 시시콜콜한 이상한 만화까지 죄다 수입해오던 90년대~2000년대초까지완 너무 다르다. 시대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갈라파고스라 외부 정보를 편협하게 받아들였거나 방사능에 뇌세포가 산산조각났거나


 창피한 일이지만, 어쨌든 만화 출판 업계가 몰락하고 웹툰이 대세가 되는 와중에 한국에서 일본만화의 영향력이 거의 사라졌다. 물론, 저 넷우익의 일본만화에 대한 자신감은 이해한다. 예전보단 못 하다해도 일본만화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퀄리티를 자랑하니까. 그런데 어쩌겠나 한국의 환경이 이런 것을. 차라리 여전히 한국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애니메이션을 언급할 것이지.


 아, 그리고 설사 한국에서 일본만화가 절대적 인기를 누린다하더라도 쿠데타 안 일어난다. 비웃음과 불매운동만 더 거세질 뿐이다.

  1. 그나마 최근에 불법을 근절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기고 10대 사이에 매니악하게나마 남아 있던 일본만화팬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판매량이 늘었다고 들었다. [본문으로]
  2. 일본은 여전히 웹툰이나 E북이 대세로 나서지 못 하고 있다. 이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일본의 만화업계가 허용하지 않는 탓이다. 이에 대한 한탄이 이어지는 가운데 웹툰 시장은 한국의 웹툰으로 도배되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