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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서 새벽까지] 쿠엔틴과 로버트의 B급 덕력 테스트

즈라더 2021. 4. 1. 06:00

 초기 쿠엔틴 타란티노가 본인의 색채를 진하게 묻혀서 B급 정서를 소화해내는 감독이었다면,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그냥 날 것 그대로의 B영화를 만들었다. 엘 마리아치 트릴로지는 그나마 폼이라도 잘 잡았지, 황혼에서 새벽까지는 그야말로 극장에서 팝콘 던지며 보는, 그라인드 하우스 전용 영화에 가깝다. 그 누구도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걸작이니 잘 만들었다느니 하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평가는 영화의 의도에 어울리지 않는다.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매력이라면 쿠엔틴 타란티노가 쓴 각본 특유의 '아가리 파이팅'과 완벽한 B영화를 추구한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연출 아래에서, 조지 클루니나 하비 케이틀, 줄리엣 루이스, 셀마 헤이엑과 같은 배우들이 진지하게 연기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뱀파이어들은 너무 약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고, 조악한 특수효과는 그야말로 70년, 80년대의 B영화과 흡사하다. 그런 긴장감이라곤 1도 없는 환경을 펼쳐놓고 엄근진 선사하는 연기를 한가닥 하는 배우들이 펼쳐주신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인가 싶어서 TV를 향해 마시던 펩시 제로(이거 맛있다)를 던질 뻔했다.


 이게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진면목이다. 그라인드 하우스에서 앞좌석에 다리를 올리고 팝콘을 으적으적 씹다가 어이없는 씬 나올 때마다 Fuck U를 외치며 팝콘을 스크린으로 던진 뒤 킬킬거리게 하는 B영화를 90년대 중순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동시 상영이 아니면 죽어도 돈 내곤 안 보겠다고 뻐길 법한 그런 영화. 이 B급 정서를 이해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도, 재미없게 볼 수도 있다. 


 참고로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2000년대에 들어서도 이 영화와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쿠엔틴 타란티노와 함께 만든 그라인드 하우스 프로젝트와 마셰티 시리즈다. 만만치 않게 정신 나간 영화니 B급 정서를 되새기고 싶다면 한 번 찾아보자.


 황혼에서 새벽까지 블루레이는 어울리지 않게 화질이 좋다. 소스 제작에 상당히 공을 들인 모양인 데다 필름 보관도 잘 되어있었던 듯하다. 필름 보관이 잘 안 된 영화는 아무리 리마스터링에 공을 들여도 장면별 화질의 편차가 극심해지지만, 황혼에서 새벽까지 블루레이는 편차가 거의 없다.  모방의 대상이 된 B영화들과 달리 35mm 필름으로 찍은 탓에 B급 감성의 맛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해상력이 뛰어나다.

 

 이하 스크린샷은 황혼에서 새벽까지 정발판 블루레이 원본 사이즈 캡쳐. 

 

이 영화에서도 쿠엔틴 타란티노의 맨발에 대한 집착이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