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일상

개발도상국의 전유물 마천루, 고층 빌딩을 왜 한국에서 짓는가

즈라더 2021. 10. 16. 13:00

서울
한국은 이미 충분히 화려하다. 서울을 가득 매우고 있는 아파트들이 새롭게 만들어질 수록 높고 화려하게 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300미터가 넘는 마천루를 만들 필요가 없고, 꼭 높은 건물이 필요하다면 현실적으로 100~200미터 정도면 수익성을 고려할 때 적절한 수준이 될 것이다

 한국은 왜 마천루를 짓는가?


 어떻게든 '빠른 것'과 '실리'에 집중하는 한국인과 마천루가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지 알 거라고 생각한다. 마천루를 짓는 건 정말 긴 시간이 필요하고, 마천루는 수익성이 좋지 않아서 저 미국조차도 경제가 안 좋을 땐 텅 비어버린 마천루가 즐비했다. 아무래도 개발도상국들에 있어서 미국의 뉴욕과 시카고를 장식한 마천루들은 하나의 로망일 테니 이해하지만, 한국은 이제 그게 아니지 않나. 롯데월드타워를 만들 당시 그 격렬하게 반대하던 이성은 대체 어디 가고 이젠 마천루를 지어달라고 난리다.

 

 

광저우
광저우의 마천루 - 어마어마한 부동산 거품이 만들어낸 고층빌딩숲은 중국의 대도시들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과시용이다. 중국 정부가 민간인인 것처럼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들을 보면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의 마천루'라는 식으로 엄청나게 홍보한다. 아, 그렇다고 광저우가 그런 곳이란 얘긴 아니다. 광저우는 홍콩과 연계되어 중국의 핵심 도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의 마천루 - 외국인들이 한국에 도시 경관 구경하러 오는 것 같은가? 그럴 바엔 훨씬 싼 동남아시아를 가는 게 맞다. 보시다시피 마천루는 동남아시아와 중국이 과시용으로 주로 만드는 건물이다. 그러므로 마천루는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도 써먹질 못 한다


 부유한 나라의 도시라면 마천루라 이건가? 슬프게도 한국보다 부유한 나라는 여전히 많이 있고, 그 나라들 중에 한국처럼 마천루를 열심히 지으려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의 주요 마천루들은 경제 거품이 잔뜩 끼어있는 개발도상국, 그것도 독재 국가에 건축되어 있다.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마천루에 집착했던 나라가 일본인데, 일본의 마천루들 대부분이 거품 경제 시절에 건설되었거나 당시 기획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괜히 섬뜩해진다.

 

 세계에서 마천루가 가장 많은 나라인 중국도 비어 있는 마천루가 늘어나기 시작해서 수익성 문제로 공사를 중단했거나 공산당이 더는 안 된다고 여기며 기획 자체를 중단시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은 왜 자꾸 지으려고 하는 건데? 지금 당장 300미터 이상의 마천루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가 어디인지 찾아보시라. 중동과 동남아 국가와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 부동산 거품이 한국보다 훨씬 심각한 영국, 최근 부동산 거품이 마구 불어나고 있는 호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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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천루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부동산과 관련된 경제 위기가 찾아오기 전에 마천루를 잔뜩 짓는 나라가 많다 보니 '세계적 수준의 마천루를 지으려는 나라가 있다면 당장 그곳의 주식을 팔고 나와라'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데, 요새는 조금 다른 개념이 추가되어 이용된다. 일본이나 중국의 사례를 들며 거품 경제에 취해서 다른 나라에 '과시'하려고 마천루를 짓는 게 대부분이므로 당장 그 나라의 주식을 팔고 나오라는 것. 실제로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터져버렸고, 중국은 부동산 거품이 (터진 거나 다름없지만 중국은 독재 국가라 티가 안 난다) 터지기 직전이다. 그런 마당에 마천루를 있는 대로 지으려고 드는 한국은 대체 뭘 노리는 건가? 이젠 굳이 과시하지 않아도 한국은 선진국이 아니었나?

 

 정말 어이없는 건 군사적 문제와 문화재 문제로 서울에 마천루를 짓기가 어렵다보니 지방 도시나 경기권에 마천루를 지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까지 마천루를 만들고 싶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그걸 만든다고 줄어드는 지방의 인구가 상승세로 갈 것 같지도 않은데, 수익성은 제대로 고려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서울에서도 마천루는 계륵 취급을 받는다. 최근 롯데월드타워의 시그니엘 광고가 잔뜩 나오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부산
부산
부산의 엘시티와 마린시티.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흉물도 이런 흉물이 없다. 마천루란 도시의 주변과 어우러져야 하는 법인데, 그런 조화 같은 건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개발도상국 마인드로 수익도 안 나는 비리와 적자 투성이의 마천루를 짓고 있으니 외신에서 비아냥대는 것이다


 의외로 마천루를 만드려 했던 기업의 임원들은 상황을 잘 판단하고 있다. 롯데월드타워만해도 내부적 반발이 상당히 심각했는데, 오너가 죽기 전에 이루고 싶었던 꿈이 세계적 규모의 마천루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그것도 혹시나 다 짓기 전에 오너가 죽진 않을까 싶어서 날림으로 지은 경우였다. 롯데월드타워와 맞먹는 마천루로 기획되던 현대 글로벌비즈니스센터는 정의선 회장의 냉정한 판단에 따라 63 빌딩 규모 2채로 축소하려는 모양이다. 사실, 현대 글로벌비즈니스센터는 실제 필요에 의해서 기획된 마천루였음에도 현실성과 수익성을 철저히 고려해서 다시 설계한 것이다. 은근히 정의선 회장이 비즈니스 측면에선 판단력이 매우 뛰어나다.


 100m에서 200m 정도의 마천루는 어느 정도까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천, 부산 등에 예정되어 있는 엄청난 높이의 마천루는 포기하길 바란다. 주변 건물들의 상태를 보아할 때 롯데월드타워와 마찬가지로 반쯤 흉물처럼 보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인천과 부산이 기획하는 마천루는 실사용을 위해 만들어진 포스코 타워나 롯데월드타워가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이유인데, 무려 '랜드마크가 필요해서'라고 한다. 부산은 엘시티라는 흉물을 만들어놨으면서 뭐가 더 필요한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인천에는 이미 포스코 타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