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일상

중국 자본의 문화 침략, '겨우 서른'과 장수잉 그리고 WeTV

즈라더 2021. 6. 17. 12:00

 계기 혹은 빌미. 중국에게 가장 위험한 낱말이다. 


1. 넷플릭스에서 한국에 서비스한 중국 드라마 중 가장 인기를 누린 드라마가 뭘까? '겨우, 서른'이란 작품이다. 남자들 사이에선 '그게 뭔데?' 싶겠지만, 이 드라마는 여초 사이트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돌아서 한국 넷플릭스 주간 순위 10위 안에 들어가는 대박을 터트렸다. 한국 드라마도, 미국 드라마도 아닌 무려 43부작이나 되는 중국 드라마가 한국에서 10위 안에 들었다는 건 파격 그 자체다.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중국의 한국 대중문화 공략의 빌미가 되었다.

 

장수잉 - 헛물 켜는 중국인들에게 미안하지만, 너희가 오바떨 정도로 인기 없다


2. '겨우, 서른'을 계기로 중국 연예인에 대한 관심도가 대폭발했다. 중국 연예인 관련 커뮤니티의 회원수, 게시글이 폭증했으며, 예전에는 이름으로 검색해도 정보 하나 안 뜨던 신인, 비인기 연예인의 정보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겨우, 서른'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장수잉(강소영, 江疏影)의 팬이 된 어느 여성은 SNS에 이렇게 말했다.


 "언니! 언니 한국 사람인 거죠? 그쵸?"


이제 명백한 적국인 중국 사람을 좋아할 순 없다는 이성과, 이미 좋아하게 된 걸 어쩌라는 거냐는 감성이 부딪힌 끝에 뇌절하는 글이었다. 그러니까 어느 팬의 주접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게 또 빌미가 되어 두 가지 사건을 만들었다. 한국이 또 명백한 중국인인 장수잉을 한국인이라고 속이는 중이라는 가짜 기사를 잔뜩 내놓음으로써 중국 대중 사이의 반한 감정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중국 연예인도 한국인에게 저렇게 인기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오우양나나 - 한국인이 좋아하면 안 되는 대표적인 연예인이지만... 


3. 한국 연예 기획사들은 중국에 먹히기 딱 좋다. 일단 투자를 해서 어느 정도 지분을 확보하고 회사들의 방만경영을 이유로 경영권을 빼앗는다. 한국 연예 기획사 중에서 방만경영을 하지 않는 회사가 거의 없으므로 중국의 투자를 받은 회사들은 모두 위험하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그렇게 경영권 다툼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기사화되거나 기사화조차 없이 회사를 빼앗긴 곳들이 있다. 그렇게 경영권을 빼앗긴 곳은 바지 사장이 앉거나, 기존 대표가 자리를 유지하더라도 중국 투자자들에게 휘둘리는 바지 사장이 되거나, 아예 중국인이 일시적으로 대표 자리에 앉아 회사의 구조를 중국 지향적으로 바꾼 뒤 한국인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도 한다.


다시 말하는데, 한국 연예 기획사들 중에서 방만경영을 하지 않는 회사는 거의 없다. 금융, 경영에 대한 지식이라곤 그저 편법으로 돈을 버는 방법에 집중되어 있는 사람들이 대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방만경영을 하더라도 일단은 매출이 나오니까 놔두는 것뿐이다. 중국인들이 뒷구석에서 알게 모르게 주식을 끌어모아 세를 늘려가는 걸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경영권 다툼을 겪고 나서야 '왜 그랬을까'하고 후회를 하는 일이 빈번하다. 대형 기획사들도 안심하면 안 된다. 


웃기는 건 이와 같은 사안을 회사 대표들에게 얘기해주면 '말도 안 된다', '내가 다 처리할 수 있다'라고 말하다가 회사를 뺏긴다는 사실이다. 똑같은 패턴이다. 중소 기획사들 중엔 코로나19를 틈타 회사를 먹으려는 중국인들을 눈치챈 대표가 절대 우리 애들을 중국에 넘길 수 없다며 연예인들과 연습생들을 모조리 방출해버린 경우도 존재한다. 자연스레 회사는 공중분해. 본인은 십수억의 빚을 갚기 위해서 밑바닥부터 다시 구르기 시작했다. 이것도 벌써 몇 년 전의 이야기인데, 지금은 말할 것도 없겠다.

 

WeTV, 우주소녀 성소 근황


4. 중국의 아이치이, WeTV가 한국 진출을 노리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 대중문화에 침투하고 한국의 노하우를 싹 긁어서 흡수하려는 공작이 시작된 건 2014년(혹은 그보다 조금 이전)부터라고 한다. 뒤늦게 중국에서 한국 연예인들이 예상보다 훨씬 인기가 많다는 걸 정치가들이 깨닫고 분노했기 때문. 그 시점부터 중국은 자국 OTT들을 한국에 진출시킬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먼저 코로나19가 그 기회가 되어 한국인들이 정신없는 사이에 아이치이가 들어왔다. 사전 작업은 훨씬 전부터 있었고, 홈페이지도 일찍부터 열어둔 상태였지만, 반중 감정 때문에 자제하다가 확정시킨 것이다. WeTV는 아이치이처럼 여러 한국 드라마 제작에 돈을 대면서 서서히 침투한 게 아니라 즉각 진출을 선언했다. 어차피 WeTV를 소유한 텐센트는 JTBC 스튜디오를 비롯해 한국 드라마 제작사, 한국 연예 기획사에 수천억 원(솔직히 천억 단위에서 그칠지도 의문이다.)의 금액을 뿌려둔 상태다. 언제든 드라마와 연예인을 자기네 컨텐츠에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OTT가 만만하게 보인 것 역시 이런 상황에 한몫을 했다. 넷플릭스가 들어와서 자리를 잡는 동안 티빙을 비롯한 한국 OTT는 기술 발전, 해외 진출 등을 통한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한 게 아니라 넷플릭스 공격에만 열중했다. 결국, 넷플릭스에 시장의 50% 이상을 빼앗기는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연출, 그걸 지켜본 중국 역시 한국의 OTT는 고인물이라서 자신들의 OTT가 진출해도 대응할 수 없을 거라 여겼을 것이다. 넷플릭스와는 달리 진작부터 엄청난 돈을 한국 연예계 전반에 뿌려둔 텐센트는 말할 것도 없이 매우 쉽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 CJ는 이제야 부랴부랴 티빙의 해외 진출을 위한 밑밥을 깔고 있다. 물론, 아주 많이 늦었다. 동남아는 넷플릭스와 아이치이가 장악했다. 서구권은 아직 한국 드라마의 인지도가 높지 않다. 어마어마한 후발주자로 시작하는 주제에 어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단 말인가. 

 

WeTV의 텐센트로부터 수십, 수백억 투자를 받은 연예 기획사가 하나 둘이 아니고, 수천억을 받은 종합 엔터테인먼트가 하나 둘이 아니다. 뒷감당은 어떻게 할 건데?


5. 계기는 빌미가 되었고 그렇게 한국 연예계, 대중문화는 겉으론 화려하게 피어나면서 속은 중국이란 독에 의해 썩어가고 있다. 과연 이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조선족들은 좋아서 미치려고 하더라. 한국이 중국화된다면서.

 

 

뱀다리) 블로그에 올리는 중국 연예인 사진들은 아마 서서히 줄어들어갈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무역 전쟁을 기점으로 일본 연예인, 연예계 관련 포스팅이 확 줄어들었던 것처럼. 심지어 난 일본어를 할 줄 알고, 일본인 친구도 여럿 있으며, 일본 연예계에 깊게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점차 자연스럽게 관심이 사라지고 포스팅이 줄어들더라. 일본에 대한 감정이 엄청 안 좋아진 것, 일본 그라비아의 선을 아득하게 넘은 노출 경쟁이 원인이다. 지금 딱 일본처럼 중국에 대한 악감정이 깊어지고 있으며, 중국은 노출 경쟁뿐 아니라 다이어트 경쟁도 선을 한참 넘었다. 심지어 난 중국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므로, 더 빠르게 관심을 잃어가지 않을까 한다. 홍콩 연예계 시절부터 20년을 좋아해 온 중국 연예인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간다는 사실. 내게 굉장히 서글픈 일이다.